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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패딩, 세련된 시티 룩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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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 세련된 시티 룩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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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GQ〉에서 검정 수트 위에 잿빛 노스 페이스의 파카를 입은 모델을 봤을 때 깨달았다. 캡션에 쓰인 조언대로 이 ‘뉴트럴 컬러’의 파카를 클래식한 수트에 매치하면 정말 근사할 것 같았다. 굵은 웨이브 헤어를 한 모델 머리 위로 삐죽 올라온 후드마저 멋졌다. 사실, 노스 페이스엔 스포티한 이미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딸 애플의 유모차를 끌고 나선 기네스 팰트로는 노스 페이스의 올록볼록한 블랙 파카에 이번 시즌 버버리 프로섬의 모델들처럼 봉긋 솟은 비니와 선글라스로 멋을 냈고, 영화 촬영장에서 케이트 허드슨은 하이힐 위에 미니스커트처럼 노스 페이스의 파카를 걸치기도 했다. 코트보다 따뜻하고, 모피보다 훨씬 싼 기능성 위주의 노스 페이스의 헐렁한 파카는 이렇게 힐에 매치했을 때 더 돋보인다. 밀리터리 파카와 블랙 타이츠와 힐! 몇 년 전 지젤 번천의 스타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룩은 사토리알리스트의 스트리트 룩을 통해 더욱 매력적인 아우라를 뽐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쏟아져 나온 다운 베스트는 파카의 또 다른 신세계, 신기원을 열고 있다. 우선, 꼼 데 가르쏭의 파카. 바이커 재킷을 떠올리게 하는 스포티한 디자인에 잔잔한 도트 프린트라니! 살짝 A라인인 다운 베스트는 좀 붕 떠 보였지만 톡톡한 니트 원피스에 라이딩 부츠를 신고, 굵은 실로 짠 니트 목도리를 돌돌 감으면 한겨울 추위도 무섭지 않을 듯했다. 울과 캐시미어로 아무리 몸을 감싼다 해도 파카에 비할 것은 없으니까. 미우 미우의 파카는 진회색 가죽 베스트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니 역시 패딩이다. 알래스카 스타일로 가죽 안에 패드를 넣은 이 디자인은 사선으로 스티치 처리되어 있어 적당히 슬림해 보이는 효과까지 있다(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롱 파카의 빗살무늬 토기 같은 스티치와는 전혀 다른 느낌!). 미우 미우의 백처럼 약간 낡은 듯하면서도 세련된 가죽 색감도 마음에 들었고, 가벼운데다 따뜻하기까지 했으니 2백만원이 넘는 가격이 고민될 뿐. 참고로 다운 베스트는 후드 티셔츠 위에 부담 없이 걸쳐도 좋지만, 블랙 미니 드레스 위에 입었을 땐 의외의 재미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보온성을 가미하고 싶다면 니트 핸드 워머를 하거나 흐물흐물하게 주름진 가죽롱 장갑을 매치해도 좋겠다. 게다가 올 겨울엔 스카프, 비니, 워머 등 겨울 액세서리들이 가득 쏟아져 나왔으니 금상첨화! 드레스와 파카의 매치는 의외로 블루마린 컬렉션에서 로맨틱하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실크 드레스 위에 가죽 재킷을 매치한 셀린과는 또 다른 느낌. 달콤한 파스텔 컬러에 모피와 스팽글을 장식한 패딩은 서울 숍의 쇼윈도에 그대로 걸려 있다. 이처럼 반짝이는 스팽글이 촘촘히 장식되어 있고, 칼라나 포켓 등에 모피가 트리밍되어 있는 블루마린이나 펜디의 패딩은 눈 오는 날 더 낭만적으로 보일 듯. 화려한 주얼리를 하지 않아도 스팽글 장식과 모피트리밍이 시선을 사로잡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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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는 스키장이나 체육관 근처에서 입는 옷이란 구시대적인 발상은 이 제 머릿속에서 확실히 지워버려야 할 듯하다. 이는 드리스 반 노튼이나 두리 정, 몽클레어의 파카를 보면 더욱 확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오래전 에스키모인들의 파카가 그랬듯 여밈이 없는 반 노튼의 파카는 까슬까슬한 견 소재로 성숙함을 더했으며(조퍼스나 플레어 스커트에 그냥 툭 걸쳐 입고 나서면 되는 무난한 스타일로 겨울 재킷을 대체하기에도 충분할 듯), 두리 정은 트렌치 코트를 즐겨 입던 그레타 가르보와 캐서린 헵번에게 어울릴 법한 트렌치 스타일의 파카를, 에르마노 설비노는 하운드투스 프린트의 우븐 같은 파카를 선보였다. 또한 레이스와 스팽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몽클레어 파카는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카피되어 왔던 몽클레어의 얼룩진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듯하다. 절대 카피할 수 없는 몽클레어의 이 새로운 파카는 튤립처럼 피어 오른 봉긋한 A라인이 꼿꼿하게 살아 있으며, 가슴엔 만개한 꽃밭처럼 풍성한 기퓌르 레이스가 가득 장식되었다. 꾸뛰르적인 디테일에 어울리는 6백만원 대의 가격표가 그저 아쉬울 뿐. 한편,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파카는 드라마〈가십걸〉의 멋쟁이 세레나와 블레어가 촬영 중간에 걸치면 어울릴 법하지만, 키가 큰 편이 아니라면 파카는 짧은 게 좋다. 특히 마르니의 가벼운 하늘색 파카나 견고한 직선이 돋보이는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테일러링 파카는 스니커즈나 플랫슈즈를 신어도 부담이 없는 디자인이다.

이렇듯 올겨울 파카는 아주 꾸뛰르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며 울 코트와 모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았다. 게다가 파카는 경제상황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바닥을 칠수록 판매가 급속도로 올라간다고 하니, 올겨울에도 파카의 인기는 상승곡선을 이어갈 듯. 그래도 레이스, 스팽글, 자수를 더한 이 꾸뛰르 파카들은 마치 ‘0’을 하나 잘못 붙인 듯 엄청난 가격표를 달고 전시 작품처럼 누군가 사가길 기다리며 행어에 걸려 있겠지만. 자, 환율은 치솟고, 펀드는 무너지고, 물가는 하늘을 찌르는 올겨울! 따뜻한 파카 하나 걸치고, 블랙 타이츠에 스터드가 쾅쾅 박힌 로다테 슈즈를 신고 나서면 잠깐이라도 풍선처럼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 에디터 / 김은지
- 포토 / JAMES COCHRANE, AN JI SUP
- 출처 /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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