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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제 리

2009 S/S ‘브라’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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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S/S ‘브라’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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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의 한 카페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이 니트가 흘러내려 어깨 위로 드러난 브라끈을 놓고 대화가 한창이었다. “야, 브라끈 보여. 좀 올려봐”라는 넥타이를 목젖까지 닿을 정도로 꽉 맨 보수적인 남자의 말에 “이 정도로 뭘!”이라고 태연하게 대꾸하던 여자는 계속 주장을 펼쳤다. 그럴 만도 하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비키니 파파라치에 열광하는 인터넷 세상과 달리 우리네 현실에선 브라끈 하나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니까. 브라는 속옷이라는 고정 관념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로라이즈 팬츠 위로 살짝 보이는 팬티도, 시스루 블라우스 안에 보이는 브라도 쑥스럽고 낯간지러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옷인지 속옷인지 쉽게 알아채기 힘든 이번 시즌의 브라 룩은 뭔가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이번 시즌의 브라 룩의 차별성은 과거와 비교해 보면 더 확실해진다. 우선, 슈퍼 모델과 함께 눈에 띄는 ‘브라’를 선보여온 샤넬. 93년엔 나오미 캠벨의 건강한 피부가 그대로 비치던 시스루에 스팽글을 허전하게 단 브라를, 95년엔 클라우디아 쉬퍼가 트위드 스커트 수트 안에 입은 실버 브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이번 시즌에 선보인 에나멜 브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쳐 입은 상의처럼 보였다. 또 2년 전 F/W 컬렉션에서 니트 위에 브라를 매치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프라다는 재킷 안에 브라만 입는 신선한 브라 룩을 쏟아냈다. 겉옷과 같은 소재로 되어 있어 얼핏 보면 브라만 입은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이 룩은 섹시하기보다는 우아하다. 게다가 핫팬츠나 미니스커트가 아닌 미디 스커트로 감각적인 룩이 더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음은 물론. 80년대 열풍과 함께 프로엔자 스쿨러는 화이트 아우터 안에, 알렉산더 왕은 농구 코트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블랙 룩에 브라를 포인트로 더했다. 이는 아찔한 과거의 란제리 룩과는 전혀 다른, 일상적이면서도 무심한 애티튜드다.


항상 촬영장에서 습관처럼 다양한 란제리를 준비해 믹스하는 스타일리스트 이윤경은 브라 스타일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했다. “과거에도 브라가 주목 받은 적이 두세 번 더 있지만 차이점은 레이스를 내세운 팜므 파탈 이미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부각되고 있다는 거죠.” 그러고 보면 이번 시즌 에르메스의 웨스턴 걸 룩에선 같은 컬러의 브라가 보일 듯 말듯 숨어 있었고, 이브 생 로랑의 잘 재단된 팬츠와 재킷과 함께한 브라 룩은, 가끔씩 듣게 될 “블라우스 깜빡하고 안 입은 거 아니에요?”란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파티에서도 시도해 볼만하다. “프라다의 브라만으로도 꽤 재밌는 스타일링을 해볼 수 있어요. 얇은 니트 스웨터 안에 프라다처럼 투박한 브래지어를 더하면 색다른 기분을 낼 수 있죠. 제임스 펄스의 평범한 티셔츠 안에 어떤 브래지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잖아요.”2년 전, 배우 장미희가 누드 패브릭 위에 검정 브라가 프린트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의상을 입고 나오자, 사진 합성이 아니냐는 말까지 돌 정도로 브라 룩에 민감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브라를 겉옷처럼 즐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방법(겉옷과 같은 컬러나 패브릭을 선택하거나 재킷 속으로 살짝 보이거나!)은 훨씬 부담도 덜고 타인의 기분 나쁜 시선도 줄여줄 것이다. 어쨌든, 숨어 있던 브라가 셔츠 혹은 재킷 안에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룩이 완성될지도 모른다.


- 에디터 / 김은지
- 브라 /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 포토 / JAMES COCHRANE, KIM WESTON ARNOLD, AN JI SUP
- 출처 /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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