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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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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상 디자이너들이 지금 포화상태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주로 무엇을 하나요?'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야 이 직업을 갖는데 유리한가요?'
필자가 그 동안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어온 질문이다.
그밖에 유학의 필요성과 다녀온 후의 향방,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대중매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려하고 멋진 직업인지, 노가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지 여부 등.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준비를 하면 될지 중고등학생들 뿐만 아니라 의상 분야를 전공 하고 있는 대학생들조차 묻는 이가 적지 않다.

일단 디자인을 전공하고 싶다면 색채감각이 매우 중요하므로 미리미리 키워두는 게 좋겠다. 필자의 경우 대학 초반에 컬러 감각이 뛰어난 친구들을 따라잡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평소 전문지, 코디 사진,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패션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평상시 신경을 써서 의상의 전체적인 컬러 감이나 조화를 생각해서 옷을 입는 것도 좋다.
필자가 대학1년 때 K복장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그때 강사님이 말하길 '자기 얼굴 화장도 못하고 다니는 사람한테 누가 자기 얼굴을 화장해달라고 맡기겠는가' 라는 것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게 치장하기보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연출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7년의 시간동안 이런 저런 옷들을 다 시도해보면서 실용적이고도 미적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옷을 구상하고 결국 옷을 제작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TV나 대중매체에서는 잘 빼 입은 옷에 하이힐을 신고 앉아서 도도하게 디자인 도안이나 그리고 있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일하는 디자이너는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여느 브랜드의 디자이너 실장 이상이라고 해도 힘들 듯하다.
상상 속의 모습이 가능하다면, 의류 업의 생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그 뒤엔 발 품을 팔아 열성을 다해 도와주는 프로모션 디자이너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대학, 유학 등 학벌을 논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알아주는 대학은 아닐지라도 대학시절 내내 각종 공모전에 출품도 해보고 방학기간을 활용해서 여러 곳에서 인턴도 해보는 등 풍부한 경력을 쌓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학벌이 주는 장점은 분명 있지만 얼마나 열정적으로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의 향방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필자는 유학과 취업을 고민한 결과 실전에 바로 뛰어드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시장조사와 디자인 기획,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배울 수 있는 동대문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내 디자인을 걸고 사업할 날을 위해 말이다.
디자이너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디자이너는 우선적으로 다음 시즌을 위한 기획을 한다. 이를 위해 다음 시즌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컬러나 디자인 기획을 한 뒤, 자 브랜드 이미지 컨셉을 잡는다. 그리고 시장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세분화한다. 이는 순서가 뒤 바뀔 수도 있다.

시장 조사는 주로 디자인 실장과 이사가 시니어 디자이너를 동반하고 해외로 출장을 가서 유럽이나 일본 중국 등의 패션계를 둘러 봄으로써 다음 시즌 선보일 패션을 잡지 보다 실감나게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한 예로 아르마니 브랜드는 패턴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과학적이고 입체적인 패턴이라 국내에선 감히 흉내낼 수도 없다 하여 우리나라 모 대기업에서는 아르마니 정장을 사다가 일일이 봉제를 잘 뜯어서 그대로 도면에 패턴을 옮기기도 했다고 한다. 외국으로 시장조사를 가는 경우가 아니면 국내에서 잡지나 컬렉션 분석을 통해 알아보기도 한다. 예전에 들은 바로는 오브제의 강진영 디자이너의 경우 늘 디자인에 고심하고 개발하는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동대문 시장에 나와서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참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브랜드에서 옷을 만들어 내 보인다고 모두 유행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나라의 의류 소비 율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세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시장 조사 한 것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했으면 원단시장을 돌아다니며 원단 업체별로 스와치(원단 조각)를 걷어 들여서 페브릭 별로 나누고 디자인에 맞는 스와치를 매칭해본다. 이는 샘플을 위한 것이며 실제로 메인으로 발주가 떨어져 생산으로 갈수 있을지 원단이 중간에 바뀔지는 샘플이 나오고 나서 결정된다. 샘플 할 컬러와 원단이 정해지면 샘플 감을 끊어서 패턴실에 전달하고 패턴실에서는 옷감과 디자인 도식화를 보고 그에 맞게 패턴을 뜨게 된다. 사실 이 과정에서 대학교 때 열심히 배운 일러스트는 거의 쓸 일이 없다. 도식화와 패턴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오히려 매우 중요하다. 패턴을 뜨는데 반드시 원단 스와치를 붙여야 하는 까닭은 원단이 탄성이 있는지 유연성이 있는지 두께가 어떤지 등등의 여부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온 패턴은 샘플 감과 함께 샘플실로 넘어가게 되고 이렇게 만들어지는 샘플을 피팅 모델이 입고 피팅을 본다. 이때 패턴 수정이 일차적으로 들어가게 되고 디자인의 가감이 결정된다. 여기서 아예 사장되는 디자인도 있고 원단이 바뀌어 재샘플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으며 바로 메인 생산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패턴 수정이 되면 그레이딩(사이즈별로 패턴을 뜨는 작업)에 들어가서 샘플과 함께 메인 생산에 들어간다.

메인 생산 시에는 패턴사가 가요 척을 내주면 이를 바탕으로 작업수량을 곱하여 발주할 원단 양을 정하고 원단과 부자재를 발주한다. 예를 들면 60인치 폭일 때 보통 짧은 재킷의 경우 1.2yd(yard=36inch)정도 요척이 든다고 볼 때, 작업수량이 100장이면 120yd 발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샘플을 가지고 내는 요척은 가요척일 뿐이다. (한 장 패턴으로 샘플을 만들 때와 여러 장 마카를 뜰 때는 요척이 덜 소요된다.) 원가계산을 할 때에는 들어간 양을 재단 장수로 나누면 기랍 빠시(쓸모 없이 버려지는 원단 조각들)에 들어가는 원단 값까지 정확히 계산할 수가 있게 된다. 이렇게 계산된 요척을 실요척이라 한다. 이렇게 원단과 부자재 발주가 끝나면 디자이너가 들어가 작업지시서에 쓰인 대로 수정사항을 체크 해주고 패턴수정여부를 봐주기도 한다. 패턴을 잘하는 디자이너의 실력발휘는 여기서도 보여지게 된다 패턴을 알면 수정할 때에도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제안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왜 안 되는지 어떻게 고치면 될 지의 여부에 대해서 스스로 제안하면 디자이너들을 무시 할 수 없게 된다.

실 선에서는 대학교 때 뭘 배웠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관심 없다. 풋내기라고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면 제대로 알아두는 수 밖에. 실제로 공장 사장들이 패턴을 뜨는 경우나 패턴사의 경우 디자인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할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를 위해서도 본인이 패턴을 알면 굉장한 강점이 된다. 그리고 생산도중에 디자이너가 (브랜드의 경우는 생산관리와 디자이너가 같이 한다.) 들어가 작업지시대로 수정은 제대로 되었는지 재차 확인이 필요하다. 이때 실수하게 되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고 디자이너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꼼꼼한 작업지시서를 쓰고 정확히 작업 지시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생산이 끝나면 시야게(완성단계로 단추나 나나이찌(단추구멍), 아이롱. 워싱등)를 통해 물건이 출하하게 되고 마지막 폴리 백 하기 전에 브랜드는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를 보러 본사에서 나온다. 이때 봉제 상태와 옷감의 나오시(오염이나 수선할 부분)를 체크 한다. 여기서 시야게 공장은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보통이며 공장에 따라서는 자체 시야게를 하는 경우도 있다. 큰 공장의 경우는 자체 공장 내에 기계와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는 간단한 듯 보이지만 매우 정밀하고 꼼꼼한 작업이 필요하며 아주 복잡하다. 그래서 브랜드나 프로모션은 파트별로 업무를 나누어 진행하기에 디자이너가 관여할 부분이 그리 많지 않게 된다. 디자인에만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다.
 
동대문 시장 또한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들이 있고 선 후배가 있기도 하지만 단독으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분업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동대문 디자이너는 이 모든 걸 홀로 진행하게 된다.
이렇게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경력을 쌓게 되면 각자가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물론 자기가 할 역량에 따라 급여는 천차만별이며 자기 사업을 하느냐의 여부도 전적으로 각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타고난 능력이 뒷받침된다면야 더 바랄게 없지만 실질적인 유행을 만들어나가고 트렌드를 창조해내는 디자이너의 능력은 후천적인 열정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끊임없는 인내와 자기개발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이 바로 다음 트렌드를 이끌어갈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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