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패션

‘잇’ 트렌드로 등극한 톰보이 룩

반응형
잇’ 트렌드로 등극한 톰보이 룩


베이비복스 때만 해도 윤은혜에게 스파이스걸스는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볼 먼 나라 선배였을 것이다. 열아홉 살 채경이 시절엔 김혜자나 심혜진을 거룩한 선배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이제 당신은 새로운 선배들을 모실 수 있게 됐습니다. 마를린 디트리히, 캐서린 햅번,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애니 레녹스…”라고 귀띔해줄 만하다. 남성적인 수트를 즐겨 입던 마를린과 캐서린, 영화 <옌틀>에서 남장 여인으로 분한 바바라, 80년대 남장 여인의 대명사 애니, 이제 그들의 뒤를 이어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미소년인지 미소녀인지 헷갈리는 등장인물로 나온 윤은혜.

드라마에서 쟈뎅 드 슈에뜨의 옷들이 의외로 아주 잘 어울리던 채정안을 단숨에 쓱 훑다가도, 미니멀 섀기 커트가 인상적인 윤은혜의 남장 여자 스타일 속으로 당대 유행의 주동자인 10대와 20대들은 삽시간에 빠져들었다(사진가 조세현은 <문화일보>를 통해 드라마 속의 윤은혜 스타일을 극찬하기도 했다!). 덕분에 매스미디어들은 윤은혜의 옷차림이 ‘톰보이’ 스타일이라 대서특필하며 그 룩이 얼마나 히트치고 있는지 다루느라 정신없었다. 77년생의 내셔널 브랜드 톰보이의 80년대 광고 속에 나온 데님 오버롤 차림의 말괄량이 모델들 이후 톰보이란 낱말이 이렇게 세상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다!

쉽게 말해 톰보이는 고상하고 묵직한 매니시 룩, 앤드로지니 룩의 말을 잘 안 듣는 막내 여동생뻘쯤으로 보면 된다. 사실 이 톰보이 룩은 지난봄 디자이너들이 캣워크 위에 쫙 늘어놓은 온갖 유행들 가운데 별 눈길을 끌지 못했던 하나의 유행일 뿐이었다. 미래 여전사에게 치이고, 히피 걸들 틈에 부대끼던 톰보이가 TV 미니 시리즈 한 편 제대로 만나자마자 신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즌을 대표할 유행이 된 것! 드라마 인기와 윤은혜의 옷차림이 동시에 뜨는 통에 유력 일간지는 ‘톰보이 룩 의식조사’까지 감행할 정도였다. <동아일보>가 인터넷 쇼핑몰과 공동 조사로, 톰보이 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직접 해 볼 의향이 있느냐 등등을 2천5백여 명의 남녀에게 물었던 것. 두 질문에 별 관심 없다고 답한 각각 31.8%와 40.3%는 올 가을과 겨울 톰보이들과 맞닥뜨린다면 그 선택을 꽤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톰보이들이 슈퍼 디자이너들의 후광을 입고 드라마 속에서보다 더 우쭐댈 테니까.

발렌시아가의 신개념 톰보이 룩을 보고도 여전히 ‘관심 없다’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들에겐 유행에 관해 조언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곱고 예쁘고 아름답기만 한 것들로부터 한 발 떼기 시작한 분들에겐 올가을에 다시 출현한 톰보이들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몇 가지 사례들을 더 제시하겠다. 소녀 기질이 다분한 사내아이를 닮은 핑크빛 올인원을 디자인한 스텔라 맥카트니(“Cool!”), 양면성을 지닌 톰보이를 표현하기 위해 트위드 니커즈를 만든 구찌(“Fashionable!”), 투박한 워커를 원피스에 더해 스타일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보여준 클로에(“Stylish!”), 프렌치 톰보이들을 불러들인 DKNY와 마크와 프레피 룩에 프레피 룩을 결합한 루엘라 등등(“Chic!”).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봄부터 이 브랜드들이 묘사해온 톰보이 룩은 허스키 보이스로 탬버린을 치며 삐그덕 삐그덕거리며 춤 추며 노래 부르던 80년대 가수 이상은의 옷차림과는 전혀 다르다. 패셔너블한 몸과 아름다운 청년 같은 얼굴로 나타나 아가씨들을 사로잡던 90년대 변정수와도 다들 딴판이다. 또 윤은혜의 펑퍼짐한 톰보이 룩보다 더 긴장감 있고 날카롭고 맵시 나는 건 물론!

이 톰보이들에게선 20년대 플래퍼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장밋빛 뺨과 풍만한 가슴이 더 이상 미의 기준이 되지 못했던 시대, 대신 2차 성징이 막 시작된 소년의 몸매에 리비에라 해안에서 태운 피부가 매력적이던 말괄량이들. 당시 패션의 전통과 관습을 와장창 깨버린 플래퍼들의 갸르송 룩(프랑스 작가 빅토르 마르그리트가 22년에 발표한 소설 <라 갸르송>에서 유래한 룩으로, 짧은 머리, 타이, 셔츠, 재킷 등을 입던 마른 여자들)은 현재의 톰보이 룩과 여러 각도에서 비슷해 보인다(아기네스 딘이나 세실리아 멘데즈 같은 인기 절정의 톰보이 모델들의 리얼리티 룩도 톰보이 룩에 불을 지르고 있다).

멜빵(굵든 가늘든, 세로로 병렬시키든 X자로 교차시키든), 레페토 슈즈(말랑말랑한 흰색이든 은색이든 뭐든), 남자 수트풍의 커프스 팬츠(길이가 짧든 무릎 길이든 발목을 덮든), 그리고 셔츠와 수트 조끼와 블레이저 등은 톰보이 룩에 필요한 기본 품목. 언젠가 남편의 것처럼 보이는 헐렁한 흰색 셔츠에 연한 회색 스키니 진을 가는 멜빵으로 연결한 뒤 흑백 바둑판무늬 레이스업 구두를 신고 나타난 <보그> 패션 비주얼 디렉터는 ‘이단(異端)’ 스타일링이 21세기 톰보이 룩에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카나비풍의 톰보이 룩을 연출했던 그녀의 말에 따르면, 상의와 하의 매치에 있어 상식을 깨라는 것. 가령 낡은 듯한 티셔츠에 매끈한 턱시도 팬츠, 거친 청바지에 턱시도 셔츠에 멜빵, 혹은 원피스에 페도라나 워커의 조합으로 정통과 규칙을 거역한 채 신식 톰보이가 되라는 것.

30대인 그녀가 톰보이가 됐을 때 거짓말 하지 않고 딱 일곱 살쯤 어려 보였다. 이브 생 로랑의 스모킹 수트가 완성하는 매니시 룩이나 앤 드멀미스터의 앤드로지니 룩에 비해 나이 절감 효과마저 주는 톰보이 룩은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사진가 이보경에게서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그녀에게 톰보이 룩의 결정타는 보디라인. 가슴이나 엉덩이가 크면 볼품없다는 것(드라마 속에서 “소박한 내 가슴이 더 겸손해지겠네”라며 압박붕대로 가슴을 꽁꽁 동여매던 윤은혜를 떠올려보시라!). 특히 골반이나 엉덩이 라인이 중요하다고 그랬다. 어깨가 떡 벌어진 건 괜찮겠지만 다산형의 골반과 엉덩이는 최대한 가리는 게 톰보이 룩의 프로포션을 다듬는 기술이라고 조언한다.

한편, 몇 년 전 <보그>에 ‘About a Boy’라는 톰보이 룩 패션 화보를 진행했던 스타일리스트 타비타 시몬스는 <보그> 최신호에서 여성스러움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는 게 톰보이 룩의 핵심이라 얘기했다. 남성스러운 셔츠 하나로 충분하며 타이까지 매는 건 오버라는 것. 남편(사진가 크래그 맥딘)의 디올 옴므 재킷과 톰 브라운 셔츠를 입은 뒤 맞춘 듯 꽉 조이는 긴장감과 중성적 매력을 좋아하는 그녀는 앤 드멀미스터의 재킷을 권한다. 그리곤 루즈한 타쿤 크롭트 팬츠에 여성스러운 DKNY 비즈 장식 탱크, 발렌시아가 하이힐 하이킹 부츠를 신는다면 아주 동시대적인 톰보이 룩이 될 거라 덧붙였다.

80년대 생들에겐 낯설겠지만, 그 이전 세대 중 패션에 민감했던 분들이라면 내셔널 브랜드 톰보이가 한때 전개하던 캐치프레이즈를 기억할 것이다. 그걸 요즘 톰보이 룩에 써먹는다면 정말 제격이다. “It’s Tomboy-ish!”

- 에디터 / 신광호
- 스타일 에디터 / 손은영
- 모델 / 하영진
- 헤어 / 김선미
- 메이크업 / 유미
- 포토 / JI SUP AN
- 출처 / www.vogue.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