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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루이비통의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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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의 성공 비결

일전에 서울에서 ‘루이비통의 성공신화와 혁신’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조찬 강연회에 참석했다. 2006년 세계 명품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226억달러를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한 루이비통의 CEO인 이브 카셀의 강연이니 만큼 디자인 경영에 대해 특별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먼저 CEO인 이브 카셀의 이력부터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최고 이공계 대학이자 국가 엘리트 양성 코스인 에꼴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경영학 교육의 명문인 인시아드(INSEAD)에서 MBA를 받은 이력 때문이다. 명품 메이커답게 디자인과 관련되는 배경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편으로는 2006년에만 150억유로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LVMH그룹의 CEO다운 이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라는 우리말 인사에 이어 영어로 진행된 프레젠테이션도 인상적이었다. 자국어에 대한 지나친 자존심을 앞세워 굳이 프랑스어 사용을 고집하지 않고 통역을 사용하지 않는 데서 실용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 가지 영원한 가치

이브 카셀은 1854년부터 이어져오는 루이비통의 성공 비결로 회사가 갖고 있는 세 가지의 영원한 가치(eternal value)를 제시했다. ‘독자적인 노하우(Original Know-how)’ ‘장인정신(Craftsmanship)’ 그리고 ‘아이콘(Icons)’인데, 각각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독자적인 노하우는 모든 제품과 관련되는 기술을 사내에서 조달하되 아웃소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가격 조건이 유리하다든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등의 이유로 아웃소싱을 선호하는 상식과 크게 다르다. ‘최고 수준의 품격에 관한 강박관념’이 바로 그와 같은 원칙을 고수하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둘째로 장인정신은 제품 하나하나마다 숙련된 장인이 손수 정성껏 매만져서 결점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른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작품을 빚어내듯 극소량 생산(lean production of small units)을 고집하고 있다. 셋째로 아이콘은 형태나 색채 등에서 확연한 특성을 부여해 차별화하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루이비통 제품다운 정체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상 세 가지 비결은 세계 최고의 명품 메이커의 비결치고는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비밀스럽고 특별한 비결이 있어야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무슨 사업이든 성공의 비결은 기본에 충실하고 철저히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 준다는 데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의 CEO들이 명품과 같은 제품에 관심을 두게 됨에 따라 디자인 경영과 창조 경영 붐이 불고 있다. 저렴한 생산 단가를 무기로 하는 가격 경쟁이나, 결점이 없는 품질 경쟁이 한계를 맞고 있으니, 차별화나 특성화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뚫어야하는 CEO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디자인 경영이 당면과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 세계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는 아이콘이 될 만한 제품, 브랜드 가치가 높아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자부심을 느낄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마도 모든 CEO들의 열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품질 면에서나 디자인 면에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많은 CEO들이 디자인 경영에 대해 갖는 관심은 아주 피상적이거나, 좀 지나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기회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이 좋으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하면 되나’ ‘브랜드 정체성을 빨리 형성할 수는 있을까’ ‘OOO나 XXX 같은 디자이너를 영입하거나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우리도 아이콘을 만들어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텐데…’ 등.

그러나 그런 기대는 단지 망상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루이비통의 경우처럼 비즈니스의 기본에 충실한 바탕 위에서만 디자인의 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조건들이 부실한데, 단지 디자인만 잘한다고 해서 성공을 거둘 수는 없다. 아니, 그런 조건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예 좋은 디자인이 만들어질 수 없다. 디자인은 눈요깃감을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제품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루이비통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는 능동적으로 적극 대응하되 전략과 디자인에서는 한번 수립된 전략과 원칙은 결코 타협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아이콘을 만들어내고, 지워지지 않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비결이다. 많은 경쟁 기업들이 세일이라는 이름으로 재고를 헐값에 팔 때, 결코 세일을 하지 않는 루이비통의 전략은 곧 명품을 찾는 고객과의 약속을 굳건히 지키는 자세다.


창작 과정의 불간섭이 시행착오 줄이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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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CEO가 된 카셀은 전통적인 가치와 끊임없는 혁신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1997년에는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디렉터로 영입해 창의적인 디자인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카셀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루이비통 매장 건물 디자인의 성공 비결을 “엄선한 디자이너에게 명확한 디자인 브리프(design brief)를 제시하되,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처럼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일할 때는 처음에 브리프를 잘 주고, 창작 과정에서는 간섭하지 않은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비결임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말이다.

흔히 CEO가 바뀌면 회사 로고 등 CI가 바뀌고, 특정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입소문에 연줄을 대려하고,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주지 않으면서 왜 빨리 아이콘을 만들어내지 않느냐고 닦달하는가 하면, 브리프도 작성하지 않은 채, “유명한 디자이너이니까 다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기대하는 조급증으로는 디자인 경영의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끝으로 창의성은 디자이너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카셀과 같은 CEO와 제이콥스 같은 디자이너는 각기 다른 목표를 갖고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CEO의 창의성과 디자이너의 창의성 간의 공생적 협동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디자인 경영은 비즈니스의 혁신을 이끄는 CEO의 창의성과 그런 혁신을 가시적인 실체로 만들어주는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조화를 이루는 장(場)이다. 디자인 경영은 바로 CEO가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하는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코노미플러스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전 한국디자인진흥원장) kwchu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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