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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백, 5초백,7초백을 아세요?-누구도 못막는 명품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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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트렌드 :: 3초백, 5초백,7초백을 아세요?-누구도 못막는 명품홍역
헤럴드 생생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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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거리.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 다가온다. 남자들은 그녀의 얼굴과 몸매에 시선을 꽂지만, 여성들은 재빨리 옷과 핸드백부터 살핀다. ‘앗, 역시 루이비통!’ 여자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떡인다.

남자들은 모른다. 그러나 여성들은 안다. 왜 3초마다 마주칠 정도로 흔해 빠진 루이비통의 ‘모노그램백’을 사기 위해 오늘도 그 많은 이들이 목을 매는지…. 한국에선 이제 무슨 백을 들고, 무슨 구두를 신느냐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대변하는 증명서가 됐으니 이 도도한 흐름을 과연 누가 막을 것인가.

▶여성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3초백, 5초백, 7초백= 지하철이나 버스, 거리 곳곳에서 3초, 5초, 7초마다 마주친다고 해서 요즘 젊은층 사이에선 “루이비통은 ‘3초백’, 구찌는 ‘5초백’, 에트로는 ‘7초백’”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물론 정확한 조사를 거친 게 아니어서 이견이 분분(특히 7초백의 경우)할 순 있다. 하지만 루이비통, 구찌의 핸드백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한국 땅을 휩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 명품 백은 한국 여성(일부 남성도!)들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명품 욕망을 한껏 부채질하며, ‘나도 이젠 명품족’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상징물이 되고 있다.

요즘 서울과 부산 등지 면세점의 루이비통 매장은 열기가 매우 뜨겁다. 해외여행길에 오르며 루이비통 백을 싼값에 사려는 이들로 완전 북새통이다. 그중에서도 ‘스피디(Speedy)’는 면세점마다 하루 약 20~50개(어떤 면세점이냐, 어떤 달이냐에 따라 편차가 심하지만 하루에 이렇게 잘 팔리니 한달이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이상씩 팔려나갈 정도로 가히 폭발적이다. 전국의 루이비통 백화점 매장 이용고객과 외국에서 이 백을 사들고 오는 사람의 수자까지 합친다면 루이비통 스피디가 도시를, 대학가를, 버스와 지하철 안을 뒤덮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출퇴근길 지하철 한 칸에서 스피디를 비롯해 루이비통 모노그램 백(물론 짝퉁도 많다)을 든 여성을 서너명이상 마주치는 일은 이제 예삿일이 됐다.

일명 ‘보스톤백’이라 불리는 이 유서깊은 백(1935년에 처음 선보여져 국내에서도 1980년대 중후반 대대적인 선풍이 인바 있는 인기아이템이다)은 루이비통 핸드백 중 가장 값이 저렴(가로 25ㆍ30ㆍ35ㆍ40㎝별로 52만~58만원)하다. 루이비통 핸드백을 580~620달러선(면세점 기준)에 살 수 있다는 것은 주머니가 얇은 고객으로선 더없이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스피디는 매우 가볍고(들어보면 정말로 가뿐하다) 아무 옷에나 두루두루 무난하게 어울리는 게 매력이다. 백화점 매장에서도 스피디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긴 마찬가지. 면세점보다 20%쯤 비싸지만(약65만~72만원선) 역시 잘 팔린다. 그러다 보니 ‘스피디’는 3초마다 마주치는 ‘3초백’이 된 것이다.

물론 ‘루이비통 왕국’은 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일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발간된 ‘럭스플로전’(가야북스 간)이라는 책에 따르면 도쿄의 20대 여성 94%가 루이비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책에서 교지로 하타 루이비통 재팬 사장은 “일본에서 워낙 루이비통이 강세다 보니 일본 브랜드로 착각될 때도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한국도 만만치 않다. ‘럭스플로전’의 공동저자이자 아시아 명품마켓 연구가인 라다 차다 씨는 “20대 서울 여성의 50%가 루이비통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 중에는 ‘짝퉁’도 적지 않겠지만 최근 들어 한국도 명품 소비의 5단계(정복→경제성장→과시→동조→일상화) 중 4단계인 ‘동조’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에 루이비통, 구찌 같은 대표 명품 백들이 더욱 거리를 도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명품 소비의 최종 단계(일상화 단계)에 접어든 일본에선 초등학생까지 루이비통 지갑을 쓰고, 생선가게 상인들조차 루이비통 가방에 영수증을 보관할 정도니 한국에서는 좀더 갈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즉 일본에서 루이비통이 스시나 녹차처럼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필수품이 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자판기 커피처럼 흔해질 날이 멀지 않았다. 아니, 이미 충분히!! 흔해졌다.

▶유니폼이면 어때요? 명품 대열에 진입하면 그만이죠!= 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면세점을 찾은 대학생 K씨(22)는 에트로 백을 사려는 어머니와 입씨름을 벌어야 했다. K씨는 “루이비통을 사서 같이 쓰자”고 고집했고, 결국은 루이비통 백을 구입했다. 그는 “우리 같은 초보 명품 입문자에게 루이비통 ‘스피디’는 정말이지 딱 맞는 백이다. 또 어머니와 딸이 함께 쓸 수 있는, 전 연령대를 만족시키는 백”이라며 “친구 4명과 일본에 갔는데 모두 ‘스피디’여서 가방이 수시로 바뀌곤 했다”고 들려줬다. 또 “지난해까지도 ‘짝퉁’이 꽤 있었지만 올 들어서 대학가에선 ‘짝퉁’은 졸업하고, 오리지널을 구입하는 게 대세”라고 귀띔했다.


모 특급호텔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Y씨(26)도 얼마 전 ‘스피디 35’(가로 35㎝ 크기)를 샀다. Y씨는 “나도 스피디가 너무 흔해서 고개를 저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명품치고는 너무 싸고, 튼튼한 데다 청바지에도 어울리고 정장에도 무난하게 어울려 만족한다. 쓰임새가 좋아 이젠 개의치 않으며 들고 다니게 됐다”며 “당신 같으면 수많은 핸드백 브랜드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무얼 고르겠느냐? 아마도 루이비통 모노그램을 고를 것”이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상반된 의견도 적지 않다. 회사원 C씨(33)는 “몇 년 전 ‘모노그램’을 샀는데 요즘은 옷장 속에 처박아 놓았다. 여고시절 똑같이 들었던 책가방도 아니고 너무 하지 않느냐?”며 “학창 시절엔 그렇게 똑같은 걸 끔찍하게 싫어하더니 아무리 명품가방이라지만 죄다 똑같은 가방을 들고 명품족입네 하는 건 소가 웃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파리에서 10년 넘게 활동했던 패션컨설턴트 심우찬 씨도 “프랑스인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루이비통 백을 유니폼처럼 너나 없이 들고다니는 것을 ‘몰개성적의 극치’로 보는 이들이 많다”며 “럭셔리 패션상품, 소위 명품은 그 사람의 전체적 이미지, 패션 연출력, 지적인 면모와 어우러질 때 빛을 발하기 마련인데 50만~60만원짜리 백 하나 샀다고 명품 대열에 진입했다고 판단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루이비통에 비하면 구찌는 디자인이 다양해 ‘5초백’으로 꼽히긴 해도 ‘이거다’ 하는 대표 아이템은 없다. 구찌의 ‘G’로고가 새겨진 사각 자카드백이 5초백 후보로 가장 유력하지만 G로고의 구찌 백 전체를 5초백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7초백으로 지목되는 에트로는 페이즐리 무늬의 갈색 백이 베스트셀러 백. 주로 40~5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C’로고가 프린트된 셀린느 백과 프라다 백, 체크무늬가 도드라지는 버버리 백이 7초백에 더 가깝다는 설도 있다.

이들 다종다기한 명품 백 중에서도 매출이 가장 잘 올라 ‘효자상품’으로 꼽히는 디자인은 역시 로고가 반복적으로 찍혀 ‘오천만(정확하게는 4900만명)이 모두 일거에 알아볼 수 있는 로고피케이션 백’이다. 따라서 역시 명품 구입은 자기만족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입증해주고 있다.

▶강박에 가까운 명품 집착, 누가 막으랴=한국의 명품에 대한 집착은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이미 꼭짓점을 찍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 명품시장은 브레이크 없이 해마다 10~15%씩 성장하고 있어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 탐나는 시장에서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거의 필사적이다. 게다가 남과 똑같이 보이기 위해,또 남과 똑같이 행동하기 위해 명품을 구입하는 일본인과는 달리, 한국의 젊은층은 ‘같으면서도 튀기 위해’ 명품을 구입한다. 매우 이율배반적이지만 이 복잡미묘한 심리를 꿰뚫는 작업이 사실 간단치 않다.

또한 한국 여성들의 ‘외모 및 세련된 패션에 대한 욕망’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준다. 한국을 찾는 외국 명품업체의 CEO들이 다분히 접대성(?) 멘트이긴 하겠지만 “한국 젊은 여성들의 미적 센스와 명품 소화능력은 정말 놀랍다. 단연 최고 수준”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것도 이를 입증한다. 한국여성들의 거의 강박에 가까운 외모와 패션에 대한 집착은 뷰티산업의 팽창과 함께명품의 매출을 놀랍게 성장시키고 있다. 결국 “루이비통과 구찌는 거의 홍역이다. 누가 이를 막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탄식마저 나왔다. 부작용도 많지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얼마 전 ‘럭셔리 코리아’를 펴낸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자학과)는 “기성세대 시각에선 명품 백에 목을 매는 젊은층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들에게 물질주의를 버리라고 강변할 순 없다”며 “들로 산으로 나가 놀기를 즐기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요즘의 20대는 소비문화가 놀이문화를 대체한 첫 세대”라고 지적했다. 즉 쇼핑몰 누비기가 최고의 놀이라는 것.

사치의 유형을 ▷과시형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 등으로 분류한 김 교수는 최근과 같은 ‘덩달아 명품 백 구입’은 남과 똑같아지길 원하는 동조형 사치에 해당된다고 분류했다. 또 20대 여성의 경우는 ‘질시형 사치’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명품이 남들의 무시를 막아주는 ‘갑옷’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 명품이 매우 흔하더라도 대열에 끼어든다고 분석했다.

한편 명품 백이 대중에게 파급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명품업체가 스타 등 트렌드세터들에게 백을 제공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버즈(buzzㆍ원래는 윙윙거리는 소리를 뜻하나 열광으로 해석된다)’가 조금씩 생성되면 VIP고객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단계에는 도시 전체가 떠들썩해질 정도로 버즈가 창출되는 것이다. 일반대중은 결국 이 시끌벅적한 버즈를 좇아 행동하며, 지갑을 열고 명품을 구매하면서 열풍을 만들어간다. 그로 인해 똑같은 백들이 사방에 쫘르르 깔리는 것이다.


최근들어 “이 땅의 소비자들은 세상에 태어나 엄마, 아빠 다음으로 명품을 자각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을 정도로 명품의 유혹은 참으로 강력하고 치밀하다. 파고드는 연령층도 날로 어려지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구찌며 코치의 예쁜 휴대폰 줄을 열망하는 것.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갖기도 전에 ‘무차별 소비’에 사정없이 노출되는 젊은이들에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명품 백 사재기가 팽배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명품 백은 이제 더이상 ‘핸드백’만이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신분을 증명하는 증명서요, 사회적 프로토콜(규약)인 것이다. “적금통장 없인 살아도 명품 백 없이는 못 산다”고 외치는 젊은층이 늘면서 오늘 명품시장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처럼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명품은 내 손에 넣을 때는 황홀하지만, 가질수록 더 배고파지게 마련이다.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가 더 근사해 보이는 법이다. 지갑은 얇게 하고, 욕망은 더욱 두껍게 만드는 명품. 이 홍역을 과연 누가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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